BL필 인 더 블랭크(FILL IN THE BLANK)

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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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신의 이민자이자 동성애자였던 이안은 그래서 더 마음의 문을 닫고, 무심한 척을 하면서도 벽장 밖의 세상을 궁금해했다. 익명에 신분을 숨기고 욕망을 분출했던 남자들의 몸을 탐닉하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던 찰나, 그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던 소년을 만났다. “네가 날 꼭 찾아 주면 좋겠어.” 아마도 첫사랑일 그 녀석마저 잊어 보겠답시고 드나들었던 게이바에서 어둠에 몸을 숨긴 남자와 키스를 했다. 묘한 말을 속삭이던 낮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턱을 감싸 쥐었던 손과 목덜미에서 맡았던 달큰한 향기도. 분명 어디선가 맡아 본 적이 있었다. “그럼 또 보자, 이안.” 내가… 그에게 이름을 알려 주었던가? * * * ‘인연’이라는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상대방이었기에 도리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어야 했다. 여자를 만나고, 좋아하고, 숱한 밤을 보냈던 나는 사실 너 같은 사내 새끼에게도 성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찾았다……!” 루카는 보물 쪽지를 발견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저를 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부지불식 간에 나타난 동양인의 안면은 익숙했다. 벌써 3번째였다.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너스 룸에서, 게이바에서.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단순한 만남뿐일까! 루카는 그에게 반쪽짜리 커밍아웃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얼마 전 그와 키스하기까지 했다. 오싹오싹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5분이 넘도록 입술을 비비고 혀를 섞었다. 억지로 떠안겨진 ‘자유의 순간’을 함께 공유했던 남자, 비슷한 향기를 풍겼던 그 녀석이, 마침내 루카를 발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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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마가 속삭일 때
8
2 아이돌이 집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