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소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을 순 없다

러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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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진 신성한 맹세로 진행된 정략결혼. 결혼식 도중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나는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죽는 인물이다. 그것도 책에선 자세히 다루어지지도 않은 암살이라는 사건으로! 왜! 누가? 언제? 어디서?! 내가 어떻게 죽는지 알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지?! * * * 먹었다면, 내가 이긴 거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려는 찰나, 뒤통수에 무언가가 닿았다. “읍?!” 곧 강하게 앞으로 끌려갔다. 이미 약은 모두 삼킨 주제에, 마치 제 혀에 남은 맛을 내게 전해야겠다는 듯 그는 내 입속 구석구석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맛을 잘 느낄 혀가 잡혔다. “으…… 으읍……!” 미지근하고 축축한 것이 느긋하게 혀를 핥아 올리자, 쓴맛 사이로 찌르르한 소름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이번엔 누르고, 문지르는 바람에 정수리에서 등줄기를 타고 빠르게 쑥 내려가는 듯했다. 분명 나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마치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만 같았다. 그의 팔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강하게 움켜쥐었다. 희미한 물소리가 귀에 닿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게 보복이 될 리가 없다. 어차피 그 약, 내 입에도 담겼었는데……? “읏, 으응…….” 결국 내 목도 꿀꺽 움직이고 나서야 그는 멀어졌다. “우욱…….” 맛없다. 도대체 뭘 넣은 걸까. 아무리 약이라도 이렇게 맛없으면 안 되잖아.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닦아 냈다. “……입을 맞춘 후에 그런 반응을 보이면 상처받는데. 상대에게 실례라는 걸 모릅니까?” “아니…… 하지만…….” 맛이 없는데 표정이 밝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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