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길들이는 비서

은아영

20

“민 비서가 잠시 내 연인이 되면 어떨까.” “……네?” 대학 시절의 연으로 상사와 비서가 된 두 사람. 맞선에 지쳐 농담처럼 내뱉은 하성의 말을 채윤은 지푸라기처럼 꽉 붙잡는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뭐?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 있어?” 그녀는 오랜 짝사랑을 감춘 채 그의 곁에 머무르고, “돈이 필요합니다.” “10억에서 10원도 빠뜨리지 않고 지불한 값을 해야 할 거야.” 진짜 연인처럼 보이기 위해 잠자리도 불사하게 되는데. * * * “나를 붙잡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정염이 이글거렸다. 시선이 그녀를 꿰뚫을 듯이 응시했다. 자신을 살게 한, 오래 짝사랑해 온 남자 강하성. 그런 그일지라도 처음을 내어 준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를 좀 더 즐겁게 해 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선을 따라 훑어내리고, 간지러우면서도 야릇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온몸을 찌르르 울린다. 팔을 들어 그의 목에 두른 채윤은 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다갈색 눈동자가 바람 앞의 갈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하성은 몰랐다.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한 채윤이 그를 지키기 위해 어느 날 신기루처럼 사라질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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