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힐다의 침실
2
신성 로마 제국의 작은 마을, 둔켈. 영주의 방치 아래 영민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가는 마을은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습니다. 사순절까지만요. “영주님이 하녀를 찾으신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온 구아스토 영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잠깐 고민에 빠졌어요. “영주님의 하녀라면 처녀여야 하잖아.” 밤 시중을 드는 것도 아닌데 왜 처녀여야 하냐는 의문은 넣어 두세요. 맹목적인 믿음에는 이유가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마을 사람들이 그걸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마을의 유지 격인 오토와 하인리히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대체 처녀가 누구지? 있긴 있나? 놀랍게도, 있었습니다! “힐데가르트!” 첫 경험은 무조건 잘생긴 남자와 하리라는 소망을 품은 덕에 아직까지 혼자 처녀로 남은 힐데가르트는 계란 바구니를 들고 영주님이 사는 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사를 만났죠. “누구냐?” 백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은 금발, 가장 맑은 날의 하늘처럼 푸르른 눈동자, 손에 쥐었다가 놓친 빛 조각보다 하얀 피부, 길고 늘씬한 사지……. 아무리 무식한 시골 처녀라지만 이쯤 되면 눈치 못 챌 수가 없습니다. 계단에서 다급히 무릎을 꿇은 힐다가 외쳤어요. “천사님! 지난주 미사 때 안 먹었다고 거짓말하고 포도주 두 번 먹은 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예요! 회개할게요! 영주님 달걀 다섯 개 훔쳐 먹은 것도 회개할게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난데없는 고해성사에 영주님은 웃고 말았죠. “기대를 깨서 미안하지만 난 천사가 아니야. 영주다.” “천사님이 아니라고요?” “그래. 날아다니지도 않고 밤에 나타나 수태 고지를 하지도 않아.” 저렇게 생겨 놓고 천사가 아니라니. 배신감이 들 법도 했지만 배신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영주님이 어쨌든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자랑 잘 수 있단 얘깁니다. 무사히 하녀로 취직한 그녀는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영주님이 잘 안 넘어와요. 대체 얼마나 과감해져야 영주님이 넘어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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