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내 심장이 얼기 전에 [단행본]

백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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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가 본체인 동쪽 산신 이헌은 못된 이무기를 잡던 중 여의주의 양기를 흡수해 몸에 이상이 생긴다. 음양의 조화가 중요한 이치대로 이 강한 양기를 다스리려면 마음을 가는 여인을 품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데. 그에 떠오르는 여인 송서령. 마음 같아선 서령을 당장 안고 싶지만 그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을 또다시 저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본문 중에서 촛불이 군데군데 켜져 있는 이헌의 침실은 아늑함과는 별개로 탕약 냄새가 가득했다. 쓴 약을 들이켠 이헌은 빈 사발을 내팽개치듯 던져놓고 답답한 듯 가슴을 풀어헤쳤다. 냉기를 다스리는 탕약을 마신 직후엔 항상 심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을 꺼내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집어넣는 것 같았다. 얇은 자리옷 사이로 근육으로 단단한 가슴이 드러났다. 침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이었다. 여인들이 보면 안아달라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정염을 내뿜고 있는 그였다. 조용한 가운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빈 약사발을 가지러 온 수종인가 해서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문 앞에서 다가오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발걸음과 희미하게 느껴지는 다른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음심을 들끓게 하는 여인의 향기였다. 침상 머리에 기대어 있던 이헌이 눈을 떠 서늘한 안광을 빛내며 문 앞에 얼음처럼 굳어 서 있는 서령을 보았다. 가늘어진 그의 눈이 몸 선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듯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여인의 자태를 훑어내리자 그녀가 더 움찔 떠는 게 보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온 것인가. 제게 먹힐 게 뻔하니 그녀가 위험하다. 뜨거워지는 마음과는 반대로 아주 차갑고 단호한 음성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저융이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돌아가거라. 나한테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내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안전하게 있어.” 하지만 여인은 꼼짝하지 않은 채 번뜩이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어요. 저를 두 번이나 구해주셨으니 저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서령이 발걸음을 옮겨 서서히 그에게 다가오자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이헌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겁을 상실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호랑이가 본체인 영물인 나를 네가 감당할 수 없으니, 다치거나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돌아가.” 그의 저지에 잠시 멈칫한 서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목숨 이헌 님께서 저를 어찌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저를 잡아먹으셔도 괜찮으니 제발 강건한 몸 상태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잡아먹는 게 어떤 건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용기 내어 말을 한 서령이 그의 침상 앞에 서서 옷고름에 손을 대었다. 저라고 생전 처음 해보는 일, 사내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는 부끄러운 행위가 쉽겠는가. 남녀 간의 방사에 대해 아는 것도 전혀 없고 보기만 해도 기가 눌리게 되는 압도적으로 큰 사내에게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죽는 것이 더 싫었다. 그 간절한 바람이 수치심과 부끄러움, 두려움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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