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더 미스트(THE MIST)

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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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가을, 고교검도대회 결승전 우승 뒤 일어난 불의의 사고. 그 사건으로 한쪽 다리와 가장 친한 친구, 전도유망했던 미래까지 모두 잃은 강무헌은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틀어박힌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몸이 불편한 이들도 건강한 모습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세계 최초의 리얼 가상현실게임 가 발표된다.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접하게 된 강무헌은 마법사 카프로스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예상치 못한 만남과 재회, 변화의 나날을 맞이하게 되는데…. *** “왜 너 같은 놈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알겠느냐고! 너는 검에 대한 재능도, 밝은 성격도 모든 것을 다 타고나서 항상 뒤에 머물러 있는 나를 비웃고 있었겠지! 네놈의 바보 같은 위선에 비참해지는 나를 너는 알기나 했어? 천재라고? 그런 게 다 뭐야!” 울고 있지 않은데도 우는 것처럼 울부짖는 승조의 외침이 내 가슴을 찔러왔지만, 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서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녀석이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난 다급했다. 차가 막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나는 승조를 세차게 밀쳤다. 승조가 커다랗게 홉뜬 눈으로 넘어져 굴러간 바로 그 직후에— 끼이이익! 쾅!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나는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허공을 부유하는 그 짧고도 긴 순간, 마지막으로 승조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기억한다……. *** [ 그러면 THE MIST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파아앗! 눈앞이 하얗게 변한 뒤 시야가 돌아왔을 때, 나는 번화한 마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제 갈 길을 가는 중이었다. 멍하니 멈춰선 채 국적 불명의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소매를 만져 보니 현실 같은 천의 질감이 느껴졌다. 머리카락 느낌도 그대로였고, 옆에 있는 집 벽을 만져 봐도 단단하고 차가운 벽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게…… VT라고? 농담 같다. 진짜로 그냥 다른 세계에 와서 만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놀라움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던 도중 문득 내가 이 게임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두 다리는 아직 처음 서 있었을 때 그대로였다. ‘진짜로 걸을 수 있을까?’ 일단 왼쪽 발을 내디딘 뒤 아주 천천히 무거운 오른쪽 발에 힘을 주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 올리고, 움직여서, 다시 한 발짝 건너 땅에 닿았다. 너무나 쉽게. 처음부터 이 다리에는 문제 따위 없었던 것처럼. “아…….” 그 순간 환희도 감격도 아닌 것이 척추를 타고 찌르르 올라왔다.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었다. 체중이 실린 오른발은 멀쩡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 메어오는 목을 참아내면서, 나는 다시 한 발짝 더 걸었다. 아프지 않았다. 무겁지도 않았다. 내 다리는 더 이상 나무토막처럼 쑤시던 퇴물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을. 이렇게 쉽게 뛸 수 있는 것을. 다시 이렇게 걷고 뛰는 날이 오기를, 꿈에서도 바라곤 했었다. 그렇게 또 걷고, 계속 걷고, 천천히 빨라지다가, 마침내 나는 미친놈처럼 마을 전체를 달리기 시작했다. *** “카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주먹이라도 한 방 올려붙여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유완이 난감한 눈빛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해라고? 친구라 생각지 않는다고 제 입으로 말해 놓고 뭐가 오해란 말인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설명이 짧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유완이 조금 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뜨거우면서도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며 손을 뻗었다. 갑작스레 얼굴로 다가오는 손을 거부하지 않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서늘한 큰 손이 완전히 뺨에 닿았다. 순간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내달렸다.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친구로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게 바로 완전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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