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연(佳緣)

신해수

330

*본 도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현실의 인물이나 단체, 상황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앉아요!” 자그마한 캐리어를 현관 앞에 놓은 채로, 주하가 말없이 세준이 있는 다이닝 테이블로 향했다. 1년을 한집에서 지내면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마주 앉아 함께 식사한 적조차 없었다. 회사 일이 바쁜 것도 있었지만, 주하는 알고 있었다. 세준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꾹 다물어버린 주하의 입술을 열리게 하려는지, 세준이 평소답지 않게 엷은 미소를 보였다.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투명해졌던 동공이 먹물 빛으로 가득 메워지고, 주하가 서서히 입술을 열었다. “그동안 저는 참 좋았어요.” 좋았다고? 생각지도 못한 주하의 말에 세준의 두 눈이 커졌다. “가족이 생겨서요. 처음이었거든요. 가족이 생겼던 건…….” 세준의 입술이 의아하게 벌어졌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가족은 심했다. 가짜 손주며느리인지 모르고 마지막까지 주하를 옆에 두고 힘들게 만들었던 그의 할아버지도, 가짜 며느리인지 뻔히 알면서도 매 순간 주하를 괴롭혔던 그의 어머니도. 그런데도 가족이 생겨 좋았었다고 말하는 이 여자가 세준은 어이가 없었다. “할아버지도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셨거든요. 진짜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울고도 눈물이 남은 걸까? 주하의 두 눈 가득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적어도 장례식에서 보였던 주하의 눈물은 가식은 아니었나 보다. 그 모습에 세준이 식탁 위에 놓인 보드라운 티슈를 꺼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 건넨다. 그가 건넨 티슈를 받기도 전에 주하의 뺨을 타고 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쉰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숙여 눈물을 닦아 준다. 흠칫 놀란 주하가 고개를 들어 세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뜨거운 시선이 가까운 거리에서 맞부딪혔다. 결혼생활 중 두 사람이 이렇게 밀접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본 적은 결코 없었다.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할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 주는 그녀의 고운 마음 때문일까? 그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주하의 말간 얼굴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순간, 세준의 입술이 가볍게 주하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그와의 계약 결혼 마지막 날, 그녀는 처음으로 불꽃 같은 밤을 보냈다. 가연(佳緣),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

불러오는 중입니다.
1 악마가 속삭일 때
8
2 아이돌이 집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