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XX 추진 위원회

꽃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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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지 6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청아를 버리고 떠났던 전 남친, 정태희가 귀환했다. 대학 시절 요란하게 연애를 했던 만큼 이별마저 화려했던 두 사람. 윤청아는 미련과 앙금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그를 도발한다. “내가 지금 이 안에… 속옷을 입었게, 안 입었~게?” “오래 굶었나 봐.” “허… 뭐, 뭐래니. 그냥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아무리 급해도 전 남친 앞에서 그러는 건 좀 없어 보이지 않아?” “차, 참 나. 야! 착각하지 마. 나 이제 너한테 아무 감정 없거든? 벗고 있어 봐라, 내가 흔들리나!” 허, 하고 헛바람을 내뱉으며 정태희가 웃었다. “다행이네. 나도 마찬가지거든.” 어두운 호텔 조명 아래, 긴 앞머리에 가려 그림자가 진 태희의 눈 안에서 무언가 다른 감정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왜인지 숨조차 참고 바라보던 청아는 태희의 눈을 마주한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다른 여자면 몰라도, 넌 아냐. 절대로.” 굳이 강조할 것까진 없잖아. 오기를 넘어 억울함이 밀려왔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에 후회가 들기도 전, 태희의 냉담한 반응에 팩 열이 올랐다. “하, 봐라. 이래도? 이래도?” 성큼성큼 걸어가 태희 앞에 선 청아가 여몄던 끈을 풀고 가운을 활짝 젖혔다. 탐스럽고 풍만한 가슴, 완벽한 곡선의 허리, 극적으로 굽이진 골반, 납작하고 판판한 배. 그 아래로 떨어지는 부드러운 라인은 아찔했다. 나긋한 살갗을 둘러싼 검은 숲은 비라도 내린 양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보았느냐. 이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 “미쳤어? 빨리 옷 안 입어?” “거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네! 그러면서 뭐? 하!” 청아의 도발에 다시 돌아온 태희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경멸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던 태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야, 뭐 하는데! 당장 옷 안 입어? 하지 마!” “봐.” “…어?” 청아가 슬그머니 두 눈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손가락 틈으로 다 보이긴 했는데 놀란 것은 사실이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손이 떨어져 가운으로 반쯤 가려진 알몸을 가리키며 태희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너 벗은 거 봐도 아무렇지도 않거든? 봐라, 안 섰지?” *** “야, 정태희.” 청아는 붉어진 얼굴로 태희를 쏘아보며 물었다. “진짜야?” “…뭐가.” “너 진짜….” 이제 내가 여자로 안 보여? 나한테서 아무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거야? 그때 말도 없이 떠났던 건, 정말로 내게 온전히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어? 사랑이,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니. 함께했던 시간도 나누었던 추억도, 정태희에게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 같아 열이 뻗쳤다. 쏟아지는 수만 가지 감정 중 단 하나도 솔직하게 내뱉을 수 없는 청아는 왈칵 성이나 냈다. “진짜 내 알몸 보고도 안 서?” “뭐?” 태희의 표정에 황망함이 서렸다. 무감했던 남자에게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 기꺼워 청아의 추궁이 집요해졌다. “그날은 술이 과했던 거지? 남자들 피곤하거나 술 많이 마시면 안 서기도 한다며.” “대체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데?” “중요하지! 내 자존심이 달린 문젠데.” “네 자존심을 왜 내 거기에다 거는 건데….” 두통이라도 온 듯 이마를 짚은 태희가 허탈하게 내뱉었다. “말해 봐, 다른 여자한테도 안 서는 거지? 아님 그새 새로운 성적 지향이라도 깨달았어?” 하나에 꽂히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청아의 버튼이 눌렸다. 취조하는 것처럼 허리에 양손을 얹고 당당하게 외쳤다.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태희가 진득한 시선으로 청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세워 보든가.” “뭐?” “기회 줄 테니까 다시 한번 해 보라고. 이젠 나도 궁금해졌거든, 이번에도 안 설지.” 변한 건 그놈의 고추만이 아니었다. 청아가 무슨 얘길 하든 순순하게 긍정하고 따르던 정태희는 이제 없었다. 청아를 도발하며 건방진 미소마저 띤 태희를 보자 버튼이 눌린 심지에 불이 붙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 내가 못 할 줄 알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줄 알았던 두 사람 사이에 뗀 적 없는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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