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도련님의 피아노

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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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봐.” 유니 말린, 빌어먹을 내 도련님은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피아노 건반을 검지로 무성의하게 쓸어 누르며 거래를 제안했다. “역시 거짓말이었지? 피아노 따위에 영혼을 팔겠다는 멍청이가 있을 리가 없잖아.” 쏟아지는 달빛 아래, 날개를 펼치고 선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를 본 순간 결심했다. 피아노를 가질 수 있다면 악마에게 이 아야 브릿의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저 피아노를 내 것으로 만들면 이 하얀 저택을 떠날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에게서 벗어날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맑은 벽안에 그린 듯 붉은 입술을 비틀며 웃는 그에게 물었다. “벗으면.” “…….” “피아노를 싸게 넘기겠다는 약속. 지킬 수 있어요?” 나의 개 같은 도련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저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도련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추를 하나, 둘 풀어냈다. 스르륵 벌어진 옷섶 안으로 유니의 시선이 박혀 들었다. “역시... 별거 없네.” 미친. 유니 말린은 한 손을 말아 제 입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개자식.” 그럼 그렇지. 저 미친놈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날 골려 먹으려 안달이 난 놈이라는 걸 간과했다. “뭐 해? 마저 벗어야지. 아야 브릿.” 유니 말린은 불쌍한 피아노의 날개를 손바닥으로 치며 턱을 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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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 사용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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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쩌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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