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정신착란 [단행본]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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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또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지.' 형에게 부모님의 병원비를 부쳐 주기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던 민혁은 손님 윤정에게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윤정의 위스키 바에 취직한다. 윤정과 친한 까칠한 손님 태원과도 안면을 트는데, 하는 말마다 정말 얄밉지만 턱턱 내미는 돈은 결코 밉지 않다. 그러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선배 주원과 재회하고, 그의 제안에 주원의 회사 물류창고로 냉큼 일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이내 본사로 부서 이동 통보를 받는데… 그곳은 태원의 비서실이었다. 그의 앞에 몇 년만에 나타난 형, 옆에 두고 사사건건 갈구는 태원, 재회 후 약간 이상해진 주원까지. 하루하루 돈에 이끌려 물흐르듯 살아가던 민혁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걸 깨닫는데. * * * “전무님. 근데 물맛이 좀 이상해요. 이거 물 맞아요?” 분명 조금 전까지 추웠는데 지금은 배 속부터 열이 올랐다. 뭔가,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놈은 내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물 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씨발. 아무 의심 없이 받아 처마시면 어떡해?” 미친놈이 진짜 뭐라는 거야. 지가 강제로 먹여 놓고선. 정태원이 우악스럽게 내 입을 벌렸다. 그래 봤자 이미 삼킨 물을 뱉어 낼 순 없었다. 턱이 뻐근하고 짓눌린 피부가 욱신거렸지만 웃음이 새 나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평소와는 달리 허둥거리는 정태원의 모습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놈도 의미 없는 짓이란 걸 깨달았는지 내게서 손을 뗐다. “주시니까 받아 처마셨죠.”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 처먹을 생각인가? 아무 의심 없이?” 또 시작이다. 저 싸가지 없는 말투. 방금까지 비실비실 나오던 웃음이 싹 그쳤다. 즐거움도 잠시, 순식간에 배 속이 뜨끈해졌다. 평소 같으면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면서 굽혔겠지만, 지금은 괜히 오기가 생긴다. 객기를 부리고 싶었다. 그것도 존나게. “전무님이 주셨으니까 받아 처마셨다고요. 저는 전무님이 주는 건 다 받아 처먹을 거예요. 돈이든. 뭐든.” “뭐?” 고작 그게 다였다. 천하의 정태원이 할 말을 잃다니. 통쾌함에 전율이 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두 번 다시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해 놓고선 제 앞에 먼저 나타난 것도 전무님이었고, 못 본 체할 수도 있었는데 협박해서 근무지까지 옮겨 버린 것도 전무님이잖아요. 하. 그래도 뭐 그게 다 싫다는 건 아니고요. 그렇잖아요. 전무님 덕분에 영화에서나 보던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어 보고, 고작 고졸 주제에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도 일해 보고. 아닌가. 사무직은 아닌가. 아무튼 간에요. 이번에 위로금도 그렇고. 전무님이 재수 없긴 해도 솔직히 저 누구한테 빚지는 것도 도움받는 것도 정말 질색인데요, 전무님이 주는 건 싫지가 않아요. 좋아. 정말 좋아.” “맛이 완전히 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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